허종식 “일제강점기 인천 송현초 여학생 13명 강제동원” 사실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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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식 “일제강점기 인천 송현초 여학생 13명 강제동원” 사실 밝혀

매일신보 1944년 7월 4일자 3면 … 송현국민학교 6학년 여학생 13명 강제동원 확인
1944년 7월 2일, 송현국민학교 13명 등 인천 여학생들 일본으로 떠난 사실도 기록
당시 송현국민학교 일본인 교장 “근로정신대 2년 다녀오면 고등학교 졸업장 줘” 회유
허종식 “13세 소녀, 일본서 감당하기 힘든 작업 … 다른 강제노동에 비해 고통 커”
인천 강제동원피해여성근로자, 2016년 7명 → 2023년 3명 남아
근로정신대 외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 인천육군조병창 “학생 동원 국내 첫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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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허종식 국회의원이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인천 동구 송현공립국민학교 (현 인천 송현초) 1회 졸업생인 여학생 13명이 근로정신대로 일본 본토에 강제동원됐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


지금까지 구술로 인천 지역 여자근로정신대가 전해진 가운데, 이번 기록을 통해 인천에서 적어도 수십명의 여학생들이 동원됐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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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44 년 9월 인천송현공립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사진<출처 : 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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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매일신보 (1944.7.4. 3면)

허종식 의원이 발굴한 매일신보 1944년 7월 4일자 3면 기사 ‘전별금(餞別金)을 헌납(獻納) 정신대(挺身隊) 의 미담 (美談 )에 따르면 인천부 (仁川府, 현 인천시) 의 여자 근로정신대 모집에 따라 송현국민학교에서 졸업생 중 27명이 응모, 13명이 합격 했다고 기록됐다.


해당 학부모들은 축하 의미로 돈을 모아 일본에 가게 될 여학생 한 명당 5 원씩 줬지만 학생들이 국방헌금하겠다며, 이 학교 이와오 ( 岩尾 ) 교장 에게 절차를 의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사진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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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면 다른 기사‘ 감연(敢然)히 증산전열(增産戰列)로 반도처녀(半島處女) 들 대진군(大進軍)’, ‘근로봉사(勤勞奉仕) 굳게 맹세(盟誓), 경성(京城)· 인천(仁川) 출신(出身) 정신대(挺身隊) 합동장행회(合同壯行會)’ 에는 이 학생들이 함께 동원된 인천 지역 다른 학교 학생들과 7월 2일 서울에서 시가행진을 한 후 일본으로 떠났다 고 소식을 전했다.<사진 2 참조>


기사엔 ‘인천 두 곳의 우수한 여성 OO명을 선정했다 ’고 기록, 송현국민학교 13명과 인근 학교 학생들이 함께 동원됐다 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3세 소녀를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여자정신근로령’ 은 1944년 8월 23일 공포실시 됐다. 그러나, 칙령 공포 이전부터 추진되고 있었던 걸 이 기사는 보여준다.


매일신보는 일제강점기 동안 발행된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이 기사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이 원해서 근로정신대를 지원했으며, 전쟁에 나가는 상황에서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일제의 정책을 미화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낸 책 ‘일제의 전시 조선인 노동력 동원’(2021)에는 1932년생 박임순 할머니가 "1944년 인천 송현국민학교 6학년 때 교장이 근로정신대로 2년 갔다 오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준다고 회유, 인천에서 1차로 50명이 동원됐다” 고 증언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송현국민학교 여학생 강제동원이 주변 학교에서도 진행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송현국민학교 여학생 강제동원은 201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공론화됐다. 1944년 이 학교에서 6학년 여학급 담임교사를 지낸 와카타니 노리코의 딸이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연구소에 기증한 것이다.<사진 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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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뒷면에는 ‘1944년 9월, 인천송현국민학교 제 1회 졸업 기념 촬영 /정신대원 7명의 환송회’ 라고 한자로 적혀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졸업식 사진인지는 불분명 하다. 당시 학교는 ‘3월 졸업 4월 새학기’ 체제인 만큼, 근로정신대에 가는 졸업생들을 환송하기 위해 재학 중인 후배 여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7명 환송회도 매일신보 기사 13명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7월 13명에 이어 9월 7명이 추가로 동원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근로정신대는 12세 이상 초등학교 정도의 교육을 받은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이들에 대한 동원지역 및 현황 등 실태 파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허종식 의원은 "강제동원된 여학생들은 일본 항공기 부품 등을 만드는 공장 등에 보내지는 경우가 많았다” 며" 어린 아이들이 감 당하기 어려운 작업으로 현재 초6, 중1 나이에 공장에서 일을 했다는 점에서 다른 강제동원과 비교해 그 고통의 정도가 적지 않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에서 인정받은 피해자는 2023년 8월 현재 인천에 3명 이 살고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별법에 따라 인천시는 2016년 ‘인천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 지원 조례’ 를 제정, 그해부터 ▲ 생활보조비 (매월 30만원) ▲ 의료비 (20만원 신청) ▲ 장제비 (100만원) 를 지원한다.


조례 제정 당시 인천에 7 명이 생존해 있었으나 전입·전출·사망 등에 따라 3명만 남게 됐다. 송현국민학교 출신 박임순 할머니는 2018년 사망했다 .


<표1.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여성근로자 지원 추진실적 (단위: 천원)>

<자료: 인천시>


근로정신대는 일본에서 노역을 마치고 온 여성임에도, 위안부와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인식 때문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거란 게 학계 측 설명이다.


송현국민학교 근로정신대를 비롯해 인천은 학생들을 강제동원한 대표적인 도시로 꼽히고 있어,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 는 지적이 제기된다.


1944년 공포된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 ’(1944 년 3월18 일)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원된 곳이 바로 인천육군조병창 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성과 인천지역 학생들은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부평 조병창에서 일을 해야 했다.


허종식 의원은 "초등학교 정도 교육을 받은 여학생은 ‘여자정신근로령’ 으로, 중등학교 학생들은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 으로 인천의 학생들이 국·내외로 일본의 전쟁에 동원시켰다” 며 "특히, 동구와 미추홀구는 일제강점기 대규모 군수공업지대로 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동원 실태에 대해선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어 후속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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