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 당신을 지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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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 당신을 지켜드립니다.

뜨겁게 지면을 달구던 태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쪽 하늘로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을 숨겨주듯 새 햐얀 구름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염분 섞인 땀을 한바가지 흘리게 만들고 만성적인 짜증을 내뱉게 만들던 태양을 제 몸 뒤로 가려주며 어서 지평선 아래로 도망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인천삼산경찰서 중앙지구대 경장 박 영 준
하늘이 어두워지고 습기가 가득 차 불쾌했던 공기들이 어느새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고, 뜨거운 태양아래 고개 숙이고 있던 가로등이 기지개를 피며 누런 전등에 불을 밝히는 시간, 나는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며 집으로 가는 퇴근길에 올랐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며, 친구, 연인과의 소소한 만남 또는 직장생활에 온 정신을 쏟느라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를 다시 볼 생각에 들떠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어야 할 길이건만 그 날 이후 나는 항상   식은땀에 젖어 즐거움이 아닌 두려움에 가득 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 날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걸으며 아까까지만 해도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뱉었던 직장에서의 짜증과 한숨 대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직장인만이 느낄 수 있는 퇴근의 행복함에 사로잡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꺾어지는 골목길을 돌아 저 멀리 집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때, 아주 찰나의 시간, 방금 전 흥얼거리던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뉴스에서 한창 대서특필되고 있던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소리를 지르며 도와 달라 수없이 외쳤지만 그날은 아무도 없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치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비켜주던 자동차들도, 목줄 없이 제집 앞마당마냥 뛰어다니던 강아지와 그 주인도, 매일   마주쳐도 얼굴 생김새도 기억할 새 없이 지나쳐갔던 수많은 사람들도 하필   그 순간 그곳에 그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파병에서 돌아온 군인이 동네 축제의 폭죽놀이 소리를 듣고 귀를 막은 채 주저 않아 있는 사진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부터의 추억이 쌓여있는 가장 친숙한 동네의 경치에 포화가 오가는 참혹했던 전쟁터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을 그 어누 누가 버틸 수 있으랴.
 
그 군인처럼 나 또한 늘 지나던 길이었고, 그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친숙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이었건만 그 순간 이후부터 나는 늘 이곳에서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제발 조금이라도 빨리, 그리고 무사히 이 골목길을 빠져나갈 수 있기만을 기도하던 그때, 어느 순간 골목길 구석구석 숨어있던 어둠들이 스멀스멀 몸을 부풀리더니 가로등이 내뿜는 불빛을 조금씩 갉아먹음과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 어둠속에 나 말고 누군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숨쉬고 있는 것 같음에도, 그것이 그냥 우연히 나와 같은 길을 가게 된 행인이 아니라는 느낌이 여자의 직감을 통해 뇌리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도망쳐야해.’ 육감은 나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있지만 나머지 오감은 어느새 어둠이 내뿜는 공포에 짓눌려 오히려 힘주어 내딛는 발걸음을 붙잡았고 내 몸은 가방끈을 질끈 붙잡고 있던 양손부터 다리까지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어 112에 신고를 해볼까 라는 생각도 잠시, 조금이라도 몸을 크게 움직이면 어둠속에 숨어있는 그 무엇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이내 포기하고 오로지 앞으로 걷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문득 팔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의 존재를 깨달았다.
 
얼마 전 피해자로 조사를 마치고 공황상태로 경찰서를 빠져나가려던 그때, 담당 형사라던 사람이 나에게 착용을 권하였던 피해자 보호용 스마트워치였다.
 
정사각형 모양에 평소에 차던 시계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 이런 것이 얼마만큼이나 쓸모가 있으랴 싶었지만 작은 새끼줄이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신청서를 작성하고 팔에 채웠던 투박한 시계가 어느새 나를 지켜줄 유일한 방패가 되어 있었다.
 
위급한 순간에 사람의 뇌는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히 활동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스마트워치의 작동방법을 급히 떠올려 시계 옆 작은   버튼을 꾹 눌렀다. 순간 어둠처럼 캄캄했던 시계가 갑자기 밝게 빛나며 무어라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지만 아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버튼을 누르면 신고가 접수되고, 위치추적이 되어 경찰관들이 나를 찾아낼 것이라 하였지만 과학기술이 그만큼이나 발전했을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던 그 순간, 골목 저편에서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빨간색 그리고 파란색이 교차되며 점등되던 불빛은 순식간에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을 몰아내며 나에게 다가왔고, 그것을 본 순간 긴장감과 공포에 짓눌려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본능적으로 불빛을 향해 달려갔다. 불빛 앞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려 주저앉았고, 불빛 속에서 걸어 나온 경찰관들은 나에게 영웅과 다름없었다.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는 경찰에서 도입한 최첨단 피해자 보호제도이다. 과거 성폭력 또는 강도, 감금 등 강력범죄의 피해자였던 사람이나 신고 등으로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여성 및 가정폭력, 협박, 폭행, 상해, 스토킹 등 여성대상 범죄의 대상이 된 여성 피해자의 경우 경찰관서에 지급을 신청할 수 있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고, 위치추적이 되며, 응답이 없이 끊어질 경우 강제수신 하여 주변 상황을 청취하여 현장 상황을 청취, 적절히 그리고 신속히 대응하여 범죄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시민의소리신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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